복달임은 1979년에 태어났다

복달임을 생각하다

1950년대 우리말 큰 사전에 등재되어 있음. 실제 기사로 검색은 1979년 동아일보 횡설수설 기준으로 작성.

시대는 변했지만, 우리의 복달임 문화는 여전히 농경사회다. 초복 즈음이면 몸보신 한다는 명분으로 고영양가의 삼계탕을 찾는다. 초복이면 복달임이 연상이 되고 이어서 삼계탕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초복=삼계탕=복달임’은 거의 같은 의미이지 싶다. 예전 신문 기사를 찾아보면, 초복이 언급된 기사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1920년대부터 검색 된다. 닭에 귀한 인삼을 넣어 끓여 먹는 요리법 또한 오랜 전통 요리법이다. 초복과 삼계탕이 오랜 전통이었으면 복달임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아니 믿고 있었다. 복달임이라는 단어를 알아보니 초복과 삼계탕과 비교해서는 신조어였다.

복달임의 시작은

복달임을 키워드로 신문 검색을 했다. 1979년 7월 12일 동아일보 횡설수설 코너에서 처음 등장한다. 초복에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쉬고, 기사 마무리로 무엇을 복달임으로 먹는다는 내용만 있었다. 복달임에 대한 용어 설명은 없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알아볼 수가 있지만, 그때의 기자는 상황상으로는 참으로 불친절했다. 지금의 나도 그렇듯 그 당시의 사람도 복달임이 궁금하지 않았을까 한다.

국립국어원의 사전을 조사하니 197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한 관촌수필을 쓴 이문구 작가의 ‘오자룡’ 작품에서 복달임이 나왔음을 알려준다. ‘밭마당에는 칠팔월에 복달임하기 알맞을 서리병아리 여남은 마리가 쭝끗거리며 모이 던져 줄 눈치만 보는…중략’ 여기서 서리병아리는 작고 볼품없는 닭을 의미한다. 병아리라고 해서 노란 병아리를 생각하면 안 된다. 소설에서 처음 등장한 복달임은 추측건대 충청도의 사투리가 아니었을까 한다. 이문구 작가는 지역의 사라져 가는 방언을 살려 작품에 녹여 내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작가의 무대가 충청도였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 이를 횡설수설의 기자가 칼럼 속에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한다. 사용이 잠잠하다가 1980년대 후반부터 가끔 신문 한두 건 등장했다. 이후로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 증가의 그래프는 우리나라가 농업 중심에서 완전히 산업 사회로 전환하는 궤와 같이 한다. 이것은 초복과 복달임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다. 초복과 복달임, 겹치는 복을 알면 맥락이 보인다.

더위에는 업드릴 복

초복의 복자는 엎드릴 복(伏)자다. 복달임도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사람 인(人)과 개 견(犬)이 모여 한자를 구성하는 엎드릴 복자는 농경사회의 한여름 풍경을 날 것으로 보여준다. 모내기하고 첫 장마를 보내고 날이 좋아지는 시기가 초복이다. 더위가 본격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쉼 없이 이어진 노동의 시간에 잠깐의 휴식이 필요한 때다. 초복 즈음이면 폭염주의보가 내린 것처럼 다들 더위를 피해 납작 엎드려 쉬었다. 초복에 관한 신문 기사 내용을 조사하면 첫 번째가 ‘쉼’이었다. 어떻게 쉬었다가 주였고 그 다음이 먹거리였다. 어디는 과일을, 어디는 어탕을, 어디는 개장국을 먹었다는 것이 매년 반복되었다. 쉼이 중요했고 쉬면서 먹을 것은 그 다음이었다. 여름이 오면 휴가를 정하는 우리들처럼 말이다. 목적지를 정하고 먹거리를 그 다음에 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초복은 여전하지만, 쉬고 먹는다는 의미였던 복달임은 반쪽만 남았다.

사라진 쉼, 먹거리만 남다

쉼이 사라진 복달임은 초복에 특별한 먹거리를 찾아 먹는 행위가 되었다. 고단백 음식, 삼계탕, 장어, 민어를 먹어야 더위를 잘 보낸다는 식의 방송이나 글로 소비가 되었다. 그와 걸맞게 개인의 SNS 또한 비슷한 내용의 정보를 끊임없이 재생산했다. 매년 주제는 같고 대상만 달라질 뿐 작년과 같은 내용이 올해에 또 나온다. 특정한 음식을 찾아 먹지 않았던 과거의 이들이 지금의 우리를 보면 무슨 말을 할까 싶다. 복달임에 대해 찬찬히 돌아볼 때가 아닌가 한다.

복달임을 생각하다
농경사회의 복달임의 의미와 지금의 의미는 다르다

다시 생각하는 복달임

복달임이 처음 등장한 1979년 기사 내용에는 복달임은 쉬면서 먹는 모든 것이었다. 쉼이 중요했던 것이 시대가 바뀌며 먹거리를 중시했다. 그렇게 몇십 년을 보냈다면 이제는 또 변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제는 초복에 특정한 무엇을 꼭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음으로 말이다. 초복이라고 특별히 무엇을 찾아 먹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하면 한 소리 듣겠지만, 구태가 맞다. 복날에 고단백을 찾던 식문화는 농경사회의 유물이다. 전통이라는 것은 변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 변할 때가 됐다. 

댓글 남기기

Food Enjoy - 식품 MD의 맛있는 기록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