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든 컵이 있다.
물이 반 정도 담긴 컵과 가득 있는 컵 두 개가 있다. 설탕 같은 양을 넣고 당도를 체크하면 당연히 반쯤 담긴 쪽이 달다. 포도가 있다. 성장호르몬을 사용하면 포도알이 커진다. 자연스레 자란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호르몬을 사용하지 않으면 크기가 크지 않은 대신 향이나 단맛은 좋다. 컵에 담긴 물이 과일의 크기라고 생각한다면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다면 어느 쪽이 달까?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맛의 관점에서는 물 반만 담긴 컵을 선택하겠지만, 상품성으로는 가득 담긴 쪽을 선택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식품의 가치 판단은 모양, 크기를 우선시한다. 이런 풍토는 성장호르몬의 사용을 조장하고 품질 기준이 된다.
호르몬제
과수 재배에 있어 호르몬제 사용은 일부 과수를 제외하고는 필수다. 특히나 포도의 경우 대부분 사용한다. 널리 알려진 호르몬은 지베렐린이다. 성장 호르몬으로 알려졌지만, 씨 없는 포도 생산의 필수 호르몬이다. 지베렐린 하나만 사용해서 씨 없고 알이 큰 포도를 생산하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다른 호르몬제가 필요하다. 씨가 생기지 않으면 성장이 안 되거나 더디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옥신이나 사이토키닌 계통을 섞어 사용한다. 우리가 익히 보고 먹는 씨 없는 거봉이나 샤인머스캣은 호르몬제를 두 개 이상 사용해 재배한 것이다.

지베렐린 등 호르몬제를 사용하지 않는 포도는 어떨까? 일단 알이 작다. 거봉이 일반 캠벨 포도 크기라면 믿을까? 게다가 씨앗이 있어 먹기 불편하다. 호르몬을 사용한 포도와 비교하면 b급 대우받기 힘들다. 같이 두고 보면 그냥 성장 불량품이다. 오랫동안 유기농 과일을 접한 딸아이도 씨앗이 있는 포도는 먹기 불편해한다. 맛과 향은 좋은데 씨 때문에 손이 잘 안 간다는 불평이다. 샤인머스캣이란 이름 때문에 머스캣(사향) 향이 난다고 설명을 보통 하지만, 머스캣 향을 아는 사람이 몇이 될까? 나도 그 향이 뭔지 잘 모른다. 게다가 숙기를 지키지 않고, 호르몬제까지 사용한 알만 큰 포도에서는 맡기 쉽지 않다. 숙기를 지키고, 호르몬제나 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은 자연재배 포도를 맛보면 전에 맡을 수 없던 향이 있다. 향은 단맛에 깊이를 주고 은은한 여운을 덤으로 준다.
식품 MD의 팁
가을이 되면 화성이나 강화의 로컬푸드 매장에 잘 익은 포도 사러 간다. 과수원에서 당도가 적당히 올라오면 익기 전 수확한다. 보기에 크고 좋은 것은 도매상이나 인터넷으로 판매한다. 작고 상품성이 낮은 것은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덕분에 나무에서 잘 익는다. 이런 상품이 추석쯤 로컬푸드 매장에 입고된다. 색이 황록색을 띤, 2kg 기준 6송이 내외의 송이가 작은 포도다. 단맛은 큰 송이 포도 두 개 합쳐 놓은 것보다 달다.
샤인머스캣은 포도의 색이 녹색을 지나 노란빛이 돌아야 익은 것이다. 파란 것은 풋내만 있다. 박스 포장에 당도 15브릭스 보장 등의 문구를 사용하면서 판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속으면 안 된다. 익은 샤인머스캣은 20브릭스가 넘는다. 덜 익은 포도를 팔기 위한 고육지책이 당도 15브릭스 보장이다. 강화읍의 로컬푸드 매장에서는 운 좋은 경우 호르몬을 사용하지 않은 자연재배 포도를 만날 수도 있다. 향이 좋고 단맛의 여운이 참으로 긴 포도다. 포도는 눈으로 선택하면 맛이 덜 찬 것을 산다. 입과 코로 선택하면 맛있는 것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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