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배의 맛을 99% 버리고 먹고 있다.

23년 전 2003년으로 기억한다. 2004년일수도 있다. 그때 초록마을 식품 팀장으로 일할 때였다. 몇 가지 의문을 품었던 것에 하나가 “왜 명절에만 먹을까?”였다. 배, 한과 등을 맛보면 꽤 좋다. 좋기는 한데 1년에 내가 배를 몇 번이나 먹을까? 한과는? 이런 질문을 나한테 던지기 시작했다. 참 좋은데 좋다고 설명할 길을 찾았다.

유기농 배가 익어가는 산청 배농원

의문을 품던 젊은 시절

일단은 소비형태를 조사했다. 배나 한과는 주로 명절때 박스 구매를 한다. 스스로 사는 것은 없고 주거나 받는다. 그 당시 한과업체는 1년에 두 번 명절 장사를 잘하는 것이 목표였다. 1년 매출액이 두 번의 명절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궁하면 통하는 법.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에 닿았다. 배와 한과를 선물세트가 아닌 소포장을 했다. 한과 선물세트에 든 유과를 과자처럼 포장했고 배는 2입으로 만들었다. 시장의 반응은 꽤나 좋았다. 시중에 있는 봉지에 든 유과가 23년 전 고민의 흔적이다. 배도 명절이나 제사에서 먹었던 것에서 일상의 과일로 들어왔다. 배를 일상화하는데 일조를 했지만,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이는 2023년, 허영만 선생님과 산청의 유기농 농원에 간 후 제대로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두 번의 인연, 깨달음

허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생산자가 배를 내왔다. 하얗게 껍질을 깎아 낸 것이라 생각했지만, 껍질이 그대로 있었다. 사과는 껍질째 먹어야 제맛이라고 아는 필자도 배는 깎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껍질에 모든 영양소가 있다는 상식을 알고 있지만, 유독 배는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배 껍질의 특성이 큰 이유다. 서걱거리는 맛이 있어 사과의 부드러움과 다른 맛이 배 껍질에는 있다. 껍질이 얇은 한아름, 황금, 원황 등의 조생종 계열은 그나마 껍질째 먹었다. 그러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향을 느꼈다. 배 껍질이 두꺼운 늦가을에 나오는 배는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생산자가 내준 껍질이 그대로 있는 배는 늦가을에 수확한 배였다.

“그대로 먹어도 되요?” 일단 먹으라고 한다. 25년 전 생산자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 표정과 손짓이었다. 가을날, 배나무 아래에서 배를 따서는 그대로 주면서 먹어보라고 했었다. 그때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껍질째요?” 당시의 장면과 향기로움이 기억이 났다.  25년 전 지나서 내준 배에서는 과거의 향이 나고 있었다. 깨달음 얻을 수 있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두 번째가 되어야 알게 되었다. 배는 향기로운 과일이지만, 향기로움은 버리고 먹고 있었음을 말이다. 선생님도 배가 이런 맛인가 하시면 놀라워 하셨다. 배는 껍질째 먹을 때 갖고 있던 향을 내준다.

AI도 가스라이팅 당한다

향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더. 배 음료 중에서는 배를 갈아서 만들었다는 음료가 있다. 툭 치고 나오는 배향(인공향)이 참으로 좋다. 게다가 숙취해소, 고기 재울 때 사용하면 좋다는 게 더해지면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을 더 받는 이유인 숙취해소와 고기 재울 때는 사실과 다르다. 배 과육에는 도움이 되는 성분이 많지만, 그건 원물일 때 이야기다. 가공하는 사이에 가지고 있던 기능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다. 가공하는 사이 고온에 성분이 기능을 잃는다. 말 잘하는 이들의 썰에 너도나도 검증없이 떠들던 것이 사실이 된 것이다. AI에게 배음료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숙취해소, 고기 재울 때 좋다는 대답을 낸다. 다시 가공품인데 질문을 하면 오류였다고 대답을 정정한다. 배음료에서 숙취해소에 좋다는 것이나 고기 재울 때 좋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상식처럼 된 것이다. 실제 사실과 부합하지는 않는다.

부합하든 아니든 사실은 배는 껍질째 먹어야 향기롭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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